역사적으로 한때 꽤나 유행했던 일본어가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민나도로보데스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민나도로보데스 뜻
‘모두가 도둑놈이다’라는 의미입니다.
みんな(민나) : 모두 泥棒(どろぼう, 도로보우) : 도둑 です(데스) : '~입니다' 서술어.
왜 정치 기사에서 이 말이 가끔 언급될까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1982년 드라마 거부실록
이 드라마는 엄청난 화제가 되었는데요. 조선시대부터 현대로 이어지는 유명한 거부들에 대해서 다룹니다. 그중 일제 강점기 시작에 일본의 부역자로 활동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김갑순‘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지요.
1872년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충청감영의 관노였습니다. 아버지와 형이 일찍 돌아가시면서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었고, 어머니는 장터에서 국밥을 팔았었습니다.
관노 관아 소유의 노비
그랬던 그가 조선 거의 말기쯤에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시기에 누군가에게 잘보였는데 나중에 호조판서가 되었습니다.
그의 밑에 들어가서 세관에서 관세를 결정하는 일을 하게 되었죠. 관세를 결정하니까 돈을 해먹기가 쉬웠던 겁니다. 그는 부를 축적하면서 땅을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던 그는 24세에 관노에서 ‘공주군수’가 되었습니다. 군수로 일을 하면서 꽤 많은 정보를 얻게 되고, 정보를 바탕으로 황무지를 매입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땅의 값이 많이 오르면서 그는 대지주로 부자가 됩니다.
여기서 그는 멈추지 않습니다.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간다는 정보를 듣고 대전에 대규모의 부동산을 취득하지요.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을 하면서 충남 도청이 김갑순의 땅에 세워지게 됩니다. 이때 또 한 번 그의 재산이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김갑순이 대전시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토지를 갖고 있었던 것은 매우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충남 대전이나 공주에는 김갑순과 관련된 건축물들이 꽤 있습니다. 대전극장, 공주극장, 유성온천 등이 그와 관련이 깊죠. 대전시에 있는 유성온천주식회사의 회장도 역임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땅투기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인물이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운도 좋고, 추진력도 좋았으니까요.
그러나 김갑순이 일제치하에 이승만 대통령으로 정권이 넘어가면서 토지개혁으로 재산을 몰수 당하게 되는데요. 이게 너무 억울했는지 김갑순이 ‘민나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놈이다)’라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 드라마가 방영되었던 게 1982년이었습니다.
5공 당시 정권과 유차고디어서 장영자 사건 등 정보를 갖고 불법적으로 부를 취득한 일들이 국민들의 마음을 어지럽혔습니다. 이런 시대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민나도로보데스’가 큰 유행어가 되었다고 합니다.
김갑순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나라가 1945년에 독립을 합니다. 그 전 1941년까지도 그는 흥아보국단 충남 준비위원으로 위촉되고 아주 활발하게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해방이 되면서 1948년에 반민특위(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에 체포가 되고 재판을 받게 됩니다. 또 이승만 대통령 토지개혁으로 재산이 크게 쪼그라드는데요.
그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재기를 위해서 큰 돈을 들여 자신의 아들과 장손을 1950년 5월 30일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시켰습니다. 선거 결과는 참패, 돈만 잃는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약 1달 뒤, 1950년 6.25가 터지게 됩니다. 격동의 시기였는데 그 당시 인민군들이 지주계급을 아주 경멸해서 가만두지 않았는데요. 하지만 이시기도 김갑순은 무사히 살아남아 1961년에 90세의 일기로 생을 마칩니다.
정리
‘민나도로보데스’라는 말이 예나 지금이나 통용되는 사회라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정치가 조금 더 선진화되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